채원개 선생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입력 2020년08월31일 10시25분 민일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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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에 조선보병대에 입대해 평생 군인의 삶을 시작

[여성종합뉴스/민일녀] 국가보훈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광복군을 지휘한 채원개(1895.3~1974.2) 선생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평안남도 영원에서 태어난 선생은 개신교 계열의 의명소학교를 졸업하고, 21살에 조선보병대에 입대해 평생 군인의 삶을 시작했다.


1920년 대한독립단 통임관구 지대장을 맡아 독립군 세력을 대대적으로 토벌하는 일본군과 전투를 하다가 관통상을 당했다. 이듬해 통의부 대표로 상하이에 파견되어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한 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에 참여했다.

 
1923년 6월 낙양군관학교 기병과에 입학해 체계적인 군사학을 배웠고, 중국 군벌의 내전에도 참여해 본격적인 실전 경험을 쌓았다. 1925년 임시정부 육군 참의부 군무부장에 임명되어 정의부와 참의부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만주로 건너가 지도자들을 만나 갈등을 봉합하고 중재했다.

 

1927년 황포군관학교 교관을 맡아 제대로 된 군사양성 기관이 없이 무장투쟁하던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군사교육을 했다. 1934년 광둥 주재 중국군에 복무하면서도 한국독립당 광둥지부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했다.


중국 광저우 동산백원을 임시정부의 임시청사로 제공하고, 아세아 여관을 임시정부 요인 및 가족들의 숙소로 활용하는 데 기여하는 등 임시정부를 측면에서 지원했다.


1940년 광복군에 합류해 참모처장, 1943년 총무처장 등을 역임하며 후방에서 지원 활동을 펼쳤다. 1944년 광복군 제1지대장을 맡는 등 전면에 나서 광복군을 지휘했다.


광복 후 광복군 제1지대를 이끌고 귀국하려 했으나, 미 군정이 광복군의 입국을 거절하고 개인 자격으로 입국만을 허락해 부대를 해체하고 부하들을 먼저 귀국시킨 뒤 이듬해 돌아왔다.


귀국 후 육군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마친 뒤 제3연대 작전참모로 부임한 이후 제3여단장, 제2사단장을 역임했고 1949년 준장으로 예편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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