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경성 연합군 포로수용소 터 재조명

입력 2020년04월27일 08시38분 이경문
트위터로 보내기카카오톡 네이버 밴드 공유

1945년 해방의 기쁨을 맞이한 경성 연합군 포로수용소 포로들의 모습
[여성종합뉴스/이경문기자] 용산구가 5월호 구 소식지(용산구소식)를 통해 일제 강점기 ‘경성 연합군 포로수용소 터’를 재조명했다.

 
경성 연합군 포로수용소(이하 수용소)는 아시아태평양전쟁(1941~1945) 시기 말레이(싱가포르) 전투에서 일본군 포로가 된 연합군 병력을 수감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시설이다.

 
개설 일자는 1942년 9월 25일, 위치는 용산 청엽정(靑葉町, 현 청파동) 3정목 100번지였다. 방직공장(이와무라제사소)으로 쓰였던 4층 벽돌건물을 재활용했다.

 
일제는 연합군 폭격으로부터 자신들의 군사·철도기지를 보호하기 위해 용산 일본군사령부 바로 옆에 백인 포로수용소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포로를 ‘방패막이’ 삼은 셈이다.

 
선전 효과도 있었다. 일제는 한반도 내 경성, 인천, 흥남 3곳에 수용소를 만들었는데, 이는 자신들의 우월성을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1945년 해방 전까지 약 3년 간 영국·호주군 포로 수백명이 경성 수용소에 머물렀고 낮에는 주로 인근 일본군 육군창고(현 캠프킴 부지), 경성역(현 서울역), 한강다리 등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포로들이 풀려나자 경성 수용소는 학교로 용도가 바꼈다. 1946년 신광기예초급중학교가 이곳에 들어섰고 지금 신광여중고가 됐다. 남아있던 수용소 건물은 2011년 철거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소식지에 실린 글, 사진은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이 제공했다.

 
김 실장은 “일전에 신광여중고 앞에서 선조들의 흔적을 찾아 온 노란 머리 외국인을 만난 적이 있다”며 “지금은 비록 벽돌하나 남아있지 않지만 결코 잊힐 수 없는 역사의 현장”이라고 말했다.

 
구는 연합군 포로수용소 터 외에도 연말까지 구 소식지를 통해 ‘근현대 역사 현장을 찾아서(용산 역사문화탐방)’ 기획 연재를 이어간다.

 
▲경천애인사 터 ▲대한제국 군기창 터 ▲김상옥 의사 항거 터 ▲대한제국 평식원 도량형 제조소 터 ▲옛 간조 경성지점 사옥 ▲옛 미8군사령부, 유엔군 지휘벙커 ▲육군 독립기갑연대 창설지 등을 계속해서 소개할 예정이다.

 
구는 매달 구 소식지 6만4500부를 발행, 통반장을 통해 주민들에게 배부한다. 우편 배송을 원하는 주민은 구 홍보담당관(☎2199-6702)에 요청하면 된다. 구 홈페이지에서 전자책으로도 볼 수 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용산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보고”라며 “바쁜 일상이지만 짬을 내서 역사 현장을 둘러 보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연예가 화제

동영상뉴스

포토뉴스

독자기고

조용형
편집국
손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