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용산문화원 ‘조선통신사길 따라 걷기’ 프로그램 운영

입력 2019년09월19일 07시37분 이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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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문화원 주관 ‘조선통신사길 따라 걷기’ 탐방코스
[여성종합뉴스/이경문기자]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조선 조정이 일본 막부(幕府)에 파견했던 300~500명 규모 공식 외교사절을 말한다. 한양도성에서 출발한 사행단은 용산을 기점으로 충주, 문경, 부산 등을 거쳐 일본 에도(도쿄)까지 1158㎞ 거리를 육로, 바닷길로 이동했다. 두 나라가 서로 신의(信)로서 교류(通)했던 옛 시절 이야기다.


용산구 용산문화원이 9월 25일부터 10월 16일까지 주 2회(수,금 오후 1시~3시)씩 6회에 걸쳐 후암동 일대에서 ‘조선통신사길 따라 걷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일 우호관계의 상징이었던 조선통신사 루트를 되살려 양국 관계 개선을 이끈다는 취지. 청년 일자리 확충(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사업)과 문화관광 콘텐츠 개발 목적도 함께 담았다.


코스는 남관왕묘(南關王廟) 터(현 힐튼호텔 인근), 전생서(典牲署) 터(현 영락보린원 일대), 이태원(利泰院) 표지석(용산고등학교 앞), 남단(南壇) 터 등 4곳이다. 탐방에 약 2시간이 걸린다.


남관왕묘는 삼국지의 명장 관우(關羽)를 모신 사당이다. 줄여서 남묘라고도 한다. 선조 31년(1598) 정유재란 당시 지어졌다. 원래 중구 남대문로5가 530번지에 위치했으나 화재, 전쟁, 도심재개발을 거치면서 현재는 사당동 180-1로 이전한 상태다. 옛 터에는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조선통신사는 이곳 남묘에서 조정 관료, 친척, 친구들과 헤어지며 석별의 정을 나눴다고 한다.


전생서는 조선시대 궁중 제사에 쓸 소와 양, 돼지를 기르던 관청이다. 고려시대 장생서 및 1392년 설치된 전구서를 계승했다. 세조 때 전생서라 개칭했으며 고종 31년(1894) 갑오개혁 때 폐지된다. 조선통신사 환송행사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태원 표지석은 용산고 정문 앞에 놓여 있다. 이태원은 조선시대 길손이 머물던 도성 근교 4대 숙소(四大院)의 하나로 공무여행자 숙박시설 중 서울에서 가장 가까웠다. 정확한 위치는 추가 고증이 필요하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옛 경성위수병원 터(현 미군부대 내) 일대로 추정된다.


남단은 남방토룡단(南方土龍壇)의 준말로 조선시대 임금이 하늘에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풍운뇌우단(風雲雷雨壇)이라고도 한다. 현 미군부대 안에 위치했다. 일반인 출입이 불가하므로 탐방단은 담벼락 밖에서 남단 위치를 조망해 보기로 한다. 


구는 행정안전부 주관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사업 공모를 통해 이번 사업을 기획했다. 사업명은 ‘우리마을 힐링스케치’다. 여행 콘텐츠에 관심 있는 만 39세 이하 미취업 청년 5명을 모집, 콘텐츠 기획 및 개발, 자료수집 절차를 이어왔다. 투어 프로그램도 이들 청년들이 직접 맡아서 진행키로 했다.


구 관계자는 “도성을 떠난 조선통신사가 용산을 거쳐 영남대로에 올랐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리고자 한다”며 “장기적으로 용산공원이 조성되면 끊어진 옛 길을 복원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가를 원하는 이는 용산문화원(☎02-703-0052~3)으로 유선 신청하면 된다. 회차별 선착순 20명을 모은다. 주거지 제한은 없다. 무료.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청년들에게 여행 콘텐츠 관련 일자리 경험을 제공하고 민간기업 취업을 연계할 것”이라며 “옛 조선통신사길을 걸으면서 한일관계개선 방안도 함께 고민해보자”고 말했다.


용산문화원은 오는 10월 18일부터 11월 6일까지 6회에 걸쳐 ‘보광동 골목길 투어’도 진행한다. 조선통신사길 따라 걷기와 마찬가지로 우리마을 힐링스케치 청년일자리사업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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